이것은 돌아와 직후의 1946년11월. 가을도 깊어지고 있던 날의 이른 아침. 장소는 카고시마현(鹿児島県) 쿠시키노(串木野). 귀한자가 큰 떼로 역 구내에 들어간다. 역이라고 해도 당시 쿠시키노역(串木野駅)은 보이는 것은 전쟁의 자취이며 일망 천리의 불탄 들판. 물론 역사도 급조의 발락 구조. 그 좁은 구내에 어디의 아이들이었는지 6~7인 있었을 것이다. 변변한 옷도 없어 난폭한 오히려를 이불 대신 떨리면서 자고 있었다. 우리의 입실의 소리로 일어난다. 아마 그들도 바보같은 전쟁의 피해자. 그리고 가족도 불명한 모양. 이른바 전재 고아인 것이다. 이것을 본 사람들은 한결같게 눈물을 흘리고 없는 물건을 쥐어짜 나누어 주려고 했다. 아마 아이들중에서는 최연장일 것이다 8세 정도의 아이가 다른 아이들을 연령의 작은 차례로 정렬시켰다. 불쌍하게 1번의 연소자는 겨우 걷는 3세 정도. 전원 무언. 우리가 베풀어 준 음식을 한 명씩에 분배이다. 여기에는 쟁탈전의 편린도 없다! 그때 부터 어떻게 되어 있는 것인가. 무사 생존하고 있다면 아마 63~68세 정도는 되어 있을 것이다. 이러한 풍경. 인양의 고난안이나 그리고 국내에서도 극단적인 수치부는 볼 수 없었다. 이것도 패전해도 마음 속에는 질서의 진정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진정이 있었기 때문 일본 재건 그리고 지금은 세계에 으뜸가는 경제대국 일본을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1900년의 전반은 군부의 폭동에 의해 대실패였지만 현재 평화로운 이 시대. 연면으로서 미래 영겁까지 이 상태를 빌 뿐이다.